디지털 부동산

공모사업 담당자로 18년, 사람을 움직이는 일에 대하여

공모사업 투자계획서를 작성하려면 여러 부서로부터 앞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계획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해당 부서와 담당자에게 새로운 사업과 업무를 하나 더 얹는 일이다.

공모사업에 선정되면 예산을 확보하고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기회이지만, 사업을 맡아야 하는 부서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새로운 사업을 맡으면 기본계획과 실시설계, 각종 행정절차, 예산 집행, 주민 협의, 공사 감독, 준공 이후의 운영과 관리까지 새로운 책임이 따라온다. 그렇다고 기존 업무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결국 공모사업 선정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일과 책임이 얹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뜻 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직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보상 없는 책임, 그리고 조직의 온도

공모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활용하는 직원은 조직에서 더 인정하고 승진이나 보직에서도 배려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선정되었다고 승진하는 것도 아니고, 어렵게 사업을 추진하여 성과를 냈다고 특별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일은 어렵고 책임은 크지만 보상은 분명하지 않다.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면 “왜 일을 더 만들려고 하느냐”,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보다 기존 업무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일에 무관심한 직원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성실성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일을 더 맡아도 그에 따른 인정과 보상이 충분하지 않은 조직의 구조도 함께 살펴야 한다.

계획서 한 장 뒤에 숨은 설득의 과정

공모사업 담당자라고 해서 언제나 적극적인 것도 아니다. 아이디어를 만들고, 지역 여건과 맞는지 검토하고, 실제로 사업을 추진할 부서를 찾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디어가 좋아 보여도 법률이나 지침에 맞지 않을 수 있고, 부지나 예산 문제로 실행이 어려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사업을 맡아 추진할 부서가 없으면 계획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공모사업 발굴은 회의를 열어 아이디어 몇 가지를 적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해당 부서의 기존 업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선정되면 지역과 부서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추가되는 업무와 책임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공모사업 담당 부서가 어떤 부분을 지원할 수 있는지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자료 협조를 받는 일도 쉽지 않다. 공문을 보내고 전화를 해도 자료가 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시 연락하면 바쁘다는 대답을 듣거나, 직접 와서 받아가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같은 조직 안에서도 자료 하나를 얻기 위해 여러 번 연락하고 직접 찾아가 취지를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전화와 메신저 사이에서

최근에는 직원들의 소통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나보다 젊은 직원들은 전화보다 메신저나 이메일을 훨씬 자연스럽게 활용한다. 내가 보기에는 전화로 잠깐 말하거나 직접 찾아가 이야기하면 금방 끝날 일도 메신저로 묻고 답하거나 이메일로 주고받는 모습을 자주 본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직접 이야기하면 상대방의 표정과 반응을 살필 수 있고, 대화 중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 공모사업처럼 자료를 요청하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 일은 요청의 배경과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데, 짧은 메시지만으로는 이런 맥락을 모두 전달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 역시 최근에는 직원들과 연락할 때 메신저를 가끔 사용한다. 써 보니 장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대화 기록이 남는다. 언제 어떤 자료를 요청했는지, 상대방이 어떻게 답했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파일이나 참고자료를 바로 첨부할 수 있고, 요청 내용을 정확한 문장으로 전달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업무를 갑자기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도 좋다. 전화는 상대방이 다른 업무를 처리하거나 민원인을 응대하는 중에도 바로 받아야 한다는 부담을 줄 수 있다. 메신저는 상대방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확인하고 답할 수 있다. 간단한 확인이나 자료 요청이라면 전화보다 메신저가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젊은 직원들이 메신저와 이메일을 많이 쓰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기록을 남기고,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하며, 업무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방식일 수 있다. 단순히 직접 대화를 피한다고만 볼 일은 아니다. 내가 직접 대화와 전화를 더 편하게 느끼는 것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일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메신저가 편리하다고 해서 모든 소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료의 제출 기한과 서식을 안내하거나 간단한 사실을 확인할 때는 메신저가 유용하다. 반면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고 추가 업무를 맡아 달라고 설득하거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려면 전화나 직접 대화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메신저로 “최근 5년간 추진 실적을 제출해 달라”고 보내면 상대방에게는 또 하나의 자료 요구로만 보일 수 있다. 직접 만나 “이 실적이 우리 지역의 사업 추진 경험과 준비 정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설명하면 자료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요청하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 방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먼저 메신저나 이메일로 요청 내용과 필요한 자료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추가 설명이나 설득이 필요한 경우에는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갈 수 있다. 젊은 직원들이 익숙하게 쓰는 소통 방식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직접 대화가 가진 장점도 함께 살리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소통 방식의 변화가 안타깝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도구를 써 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장점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전화인지 메신저인지가 아니다. 상대방의 상황을 배려하면서도, 사업의 취지와 협조의 필요성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알맞은 방법을 선택하는 일이다.

조직 밖의 세계, 상위 기관과 다른 지자체

공모사업은 조직 내부의 협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상위 기관의 정책 방향과 담당자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모 가이드라인은 기본적인 기준을 제시할 뿐, 모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같은 문장도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고, 담당자가 내용을 잘못 이해하거나 오해할 수도 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중앙부처나 광역자치단체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한다. 해당 사업이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지, 특정 항목에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지, 사업계획 변경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이때도 이메일과 전화는 역할이 다르다. 지침 해석이나 예산 사용 가능 여부처럼 나중에 근거가 필요한 사항은 이메일로 질의하여 답변을 남기는 것이 좋다. 반면 질문의 취지를 설명하거나 지침에 적히지 않은 배경을 파악하려면 전화 통화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전화로 확인한 뒤 중요한 사항은 다시 이메일로 정리해 두는 방법도 있다.

타 지방자치단체 담당자와의 정보 교류도 필요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떤 사업을 발굴하고 있는지,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어떤 문제를 겪었는지, 상위 기관의 질의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물어보면 계획서 작성에 도움이 된다. 먼저 선정된 지자체의 경험은 가이드라인만으로 알 수 없는 현실적인 정보를 준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일

결국 공모사업 투자계획서는 한 사람이 책상에 앉아 혼자 만들어 내는 문서가 아니다. 조직 안에서는 여러 부서의 사업계획과 실적, 통계와 협조를 모아야 한다. 조직 밖에서는 상위 기관의 정책 방향을 확인하고 다른 지자체의 경험과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공모사업 담당자는 공문, 전화, 이메일, 메신저, 직접 방문 등 여러 소통 방식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도구를 썼느냐가 아니라, 상대방이 사업의 취지를 이해하고 협조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했느냐는 점이다.

공모사업은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일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추진할 사람이 없으면 사업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자료가 있어도 협조를 얻지 못하면 계획서에 담을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편리한 소통 도구가 있어도 서로의 입장과 사업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계획서를 만들기 어렵다.

좋은 투자계획서는 자료를 많이 모은 계획서가 아니다. 조직 안팎의 여러 사람과 대화하고, 서로 다른 소통 방식을 이해하며, 흩어진 정보와 사업을 현실적으로 연결한 계획서다.

Exit mobile version